1602년, 이 회사에는 누가 돈을 냈을까요? 동인도회사 공모, 곧 회사가 세워질 때 투자자를 모은 일에는 큰 상인부터 하녀까지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글은 그 장부에 누가, 어떻게 이름을 적었는지 따라갑니다.
제목의 ‘첫 공모’는 동인도회사가 처음 세워질 때 투자자를 모은 일을 뜻합니다. 세계 최초의 공모라고 단정하는 뜻은 아닙니다.
‘배 한 척을 나눠 가진 사람들’ 시리즈 4편입니다. 안나(27세)와 피터는 지어낸 인물입니다. 안나가 장부에 이름을 올리는 장면도 지어낸 것이며, 실제 기록 속 인물과 금액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따로 설명합니다. 안나라는 인물은 1편 「주식은 왜 생겨서 사람을 힘들게 할까」의 ‘알고 보면’에서 소개한 실제 청약 기록에서 착안했습니다.
안나의 이야기 — 장부에 적힌 이름
첫 배의 마지막 셈은 이미 끝나 있었다. 그때 돌려받은 돈을 안나는 아직 침대 밑에 두고 있었다. 생활을 위해 남겨 둔 주머니와는 따로였다.
1602년 여름, 피터가 부엌 문간에서 소식을 전했다. 여러 도시의 회사들이 하나로 합쳐 새 회사를 세운다고 했다. 이번에는 도시 사람 누구나 돈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안나는 이번에는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알았다.
“이번에도 배가 돌아오면 나누고, 짐을 다 팔면 끝나나요?”
“이번에는 항해 한 번 하고 셈을 끝내는 동업이 아니오. 한 회사가 여러 해 동안 배를 이어서 보낸다고 하오.” 피터가 답했다.
“돈은 10년 동안 맡기고, 10년이 지나면 셈을 해서 돌려받을지 다시 넣을지 고르게 한다고 들었소. 약속한 돈도 한꺼번에 내지 않고 정해진 때에 나눠 낸다고 하오.”
10년이 지나면 스물일곱 살 안나는 서른일곱이 된다. 첫 배에서 안나는 배운 것이 있었다. 돈은 생각보다 늦게 돌아왔고, 장부에 적힌 값이 그대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끝에는 처음 낸 돈보다 많이 돌아왔다. 다음에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날 밤 안나는 두 주머니를 꺼내 놓고 견주었다. 첫 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생활을 위해 남긴 주머니가 버팀목이 되었다. 하지만 10년은 그보다 훨씬 길었다. 안나는 한참 망설였다.
망설이던 안나는 피터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이번 회사는 배를 여러 해 동안 이어서 보낸다고 했다. 첫 배처럼 짐이 잘 팔려 비용보다 많이 받으면 남는 돈이 생긴다. 그런 항해가 이어지면 회사도 장사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배가 가라앉거나 짐이 싸게 팔리는 해도 있을 것이었다. 회사가 얼마를 벌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생활을 위해 남긴 주머니는 이번에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첫 배에서 돌려받은 돈도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새 회사에 걸어 보기로 했다.
피터에게 들은 계획대로라면, 10년 뒤에는 셈을 받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돈이 얼마나 불어 있을지, 불어 있기는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안나는 그때쯤이면 부엌일이 아닌 다른 일을 골라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장부 앞에서
다음 날 안나는 피터에게 어디서 이름을 올리는지 물었다. 피터는 장부를 펼쳐 놓은 방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며칠 뒤, 안나는 그 방을 찾아갔다.
방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비단옷을 입은 상인도 있었고, 손에 밀가루가 묻은 빵집 주인도 있었다.
차례가 오자 서기가 물었다.
“이름과, 내기로 하는 금액을 말하시오.”
안나는 이름과, 내기로 정한 금액을 말했다. 서기는 커다란 장부에 그대로 적었다. 바로 위 줄에는 안나가 평생 만져 보지 못할 큰 금액이 적혀 있었다.
“말한 금액은 정해진 때에 나눠 내시오. 종이 증서는 따로 없소. 이 장부에 적힌 이름이 당신 몫의 증거요.”
안나는 장부 속 자기 이름과 금액을 확인했다. 작은 줄 하나였지만, 그 회사의 한 조각이었다.
동인도회사 공모, 누가 돈을 냈을까
1602년 암스테르담 지부에는 투자한 사람의 이름을 모두 적은 장부가 남아 있습니다. (네덜란드 국가기록원)
가장 큰 금액을 청약한 사람은 상인 이삭 르 메르로, 85,000길더를 내기로 약속했습니다. 하녀 디흐넘 얀스는 50길더를 청약했습니다. 시장 집 하녀의 딸인 흐릿헌 디르크스는 60길더를 청약했고, 이름 자리에는 X 표시가 남아 있습니다. (네덜란드 국가기록원)
그해 암스테르담 지부에서만 1,100명 넘는 사람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Petram 2020) 부유한 상인도 있었지만, 주주의 대다수는 소상인·자영업자 같은 평범한 중간층이었습니다. (암스테르담 시 기록보관소)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낼 수 있었을까
동인도회사 이전의 항해별 회사는 주로 이사들이 가족, 친구, 거래 상대에게 지분을 팔았습니다(2편 참조). 1602년에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여러 도시의 회사가 경쟁을 줄이려고 하나로 합쳤고, 회사는 여섯 도시에 지부를 두었습니다. 회사 전체 비용의 절반 넘게를 암스테르담이 맡았고, 그 돈은 지분을 팔아 마련했습니다. (암스테르담 시 기록보관소) 암스테르담 지부에서 이사들이 직접 권유해 모은 돈은 29%에 그쳤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두고, 회사가 개인적인 관계에 기대지 않고도 대부분의 저축자에게 닿을 수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Gelderblom·Jonker 2004, 651쪽)
장부에 적은 것은 ‘내겠다’는 약속이었다
장부에 남은 청약 문구는 “이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한다”는 형식입니다. (네덜란드 국가기록원) 그러니 장부에 이름을 올린 날 돈을 모두 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청약 금액은 여러 해에 걸쳐 나눠 냈습니다. 정해진 납입 시기는 1603년부터 1607년까지 이어졌습니다. (Gelderblom·Jonker 2004, 652쪽)
새 회사는 투자자에게 10년 동안 돈을 맡기게 했습니다. (Gelderblom·Jonker 2004, 653쪽) 10년 뒤의 계획과 그 뒤의 일은 5편에서 이어집니다.
회사는 종이 주식 증서를 나눠 주지 않았습니다. 장부에 적힌 기록이 소유의 증거였습니다. 몫을 남에게 넘길 때도 장부에 이름을 옮겨 적었습니다. (Gelderblom·Jonker 2004, 654쪽)
이야기 속 피터와 서기의 말은 이 사실에 맞춰 지어낸 것입니다.
누구나 낼 수 있었다는 것과 모두가 같았다는 것은 다르다
하녀와 큰 상인이 같은 장부에 이름을 올린 것은 분명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장부에 적혔다고 몫의 크기가 같지는 않았습니다. 청약 금액 85,000길더와 50길더는 1,700배 차이입니다.
회사를 움직이는 힘도 고르게 나뉘지 않았습니다. 회사 전체의 일은 지부에서 보낸 이사들이 모인 17인 이사회가 정했고, 그 가운데 8명이 암스테르담 사람이었습니다. (암스테르담 시 기록보관소) 동인도회사는 돈을 낸 사람과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나뉜 회사로 흔히 꼽힙니다. (Gelderblom·De Jong·Jonker 2013)
참여의 문이 넓어졌다는 것과, 돈이나 발언권이 평등해졌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공모와 견주어 보면
오늘의 공모도 회사가 투자자를 모아 자금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다만 1602년 장부 기록과 납입 방식은 지금과 다릅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공모에 참여한다고 원금이나 수익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정리
- 1602년 동인도회사가 세워질 때 투자자를 모았고, 암스테르담 장부에는 큰 상인부터 하녀까지 이름이 적혔다.
- 장부에 적은 것은 ‘내겠다’는 약속이었다. 돈은 여러 해에 나눠 냈고, 종이 증서 대신 장부가 증거였다.
- 참여의 문은 넓어졌지만, 몫의 크기와 회사를 움직이는 힘은 고르지 않았다.
노트에 한 줄
내 몫은 어디에 기록되고, 나는 그 회사의 일에 얼마나 말할 수 있을까?
알고 보면 — 어른 5만 명 도시에서 1,100명 넘게
연구자들은 당시 암스테르담의 어른 인구를 많아야 5만 명 정도로 봅니다. 그런데 암스테르담 지부의 첫 청약자는 1,100명이 넘었습니다.
몇몇 앞선 항해가 큰 이익을 냈다는 소식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150길더 이하를 청약한 작은 저축자들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출처: Gelderblom·Jonker (2004), 654쪽.
안나는 10년 뒤의 셈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이 회사는 처음에 10년 뒤 정리할 계획이었습니다. 그 계획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음 글 — 회사가 끝나지 않기로 한 날 — 1612년과 영구 자본
안나와 피터, 장부 앞의 장면과 대사는 지어낸 것입니다. 디흐넘 얀스, 흐릿헌 디르크스, 이삭 르 메르의 이름과 청약 금액은 실제 기록에서 가져왔습니다.
참고 자료: 네덜란드 국가기록원 “Aandelen VOC (1602)”. 암스테르담 시 기록보관소 “1602 De VOC”. Gelderblom, O. & Jonker, J. (2004), “Completing a Financial Revolution”, The Journal of Economic History 64(3), 641–672 (출판사 · 공개 원문). Gelderblom, O., De Jong, A. & Jonker, J. (2013), The Journal of Economic History 73(4) (출판사). Petram, L. (2020), 저자 블로그 글.
이 글은 주식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글이며, 특정 상품이나 종목의 투자를 권하거나 말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