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은 왜 생겨서 사람을 힘들게 할까요? 계좌의 파란 숫자 앞에서 한 번쯤 나올 법한 원망입니다. 주식에는 처음 생길 때부터 잃을 수 있는 위험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그 위험이 어디에서 왔는지, 주식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주식이 생긴 까닭을 한 가지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 바탕에는 오래된 원리 하나가 있습니다. 혼자서는 마련하기 어려운 큰돈과, 혼자 지기에는 너무 큰 위험을 여럿이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400년 전 암스테르담의 하녀 안나 이야기로 그 원리를 살펴봅니다.
‘배 한 척을 나눠 가진 사람들’ 시리즈 1편입니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다시 쓴 이야기이며, 안나와 등장인물은 지어낸 인물입니다.
안나의 이야기 — 후추 한 알과 너무 큰 배
안나는 상인 피터의 집에서 부엌일을 했다. 그날도 저녁상에 올릴 국을 끓이고 있었다. 간을 맞출 즈음, 안나는 선반 맨 위의 작은 나무 상자를 내렸다. 후추가 든 상자였다. 후추는 이 집에서도 귀하게 아껴 쓰는 것이어서, 안나는 늘 손바닥에 몇 알씩 세어 덜었다.
덜어 낸 후추를 쥔 채 상자를 다시 선반에 올려놓을 때, 촛불이 켜진 주인의 방에서 피터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녁 손님으로 온 상인에게 배를 띄우는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먼 섬에서 후추를 싸게 사서 무사히 싣고 오기만 하면, 여기서 몇 배는 받을 수 있네. 배 한 척이면 되네. 하지만 배 한 척을 띄우려면 집을 몇 채나 팔아야 하네. 그 배가 돌아오지 않으면…….”
안나는 손바닥의 후추 몇 알을 내려다보았다. 이 작은 알갱이가 그렇게 먼 바다를 건너온다는 것이었다.
피터가 말끝을 흐린 데에는 까닭이 있었다. 배가 돌아오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폭풍도, 병도, 해적도 있다. 어떤 배에서는 떠난 사람 가운데 많은 이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피터의 탁자에 모인 사람들
며칠 뒤, 피터는 배 값을 함께 낼 사람들을 집으로 불렀다. 상인들뿐 아니라 빵집 주인, 옷감 장수, 목수도 왔다. 안나는 손님들 앞에 물과 빵을 내느라 부엌 문간을 오갔다.
피터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한 사람이 배 한 척 값을 다 냈다고 합시다. 배가 가라앉으면 그 사람은 그 값을 혼자 다 잃습니다. 하지만 열 사람이 나눠 내면, 저마다 잃는 것은 자기가 낸 한 조각입니다. 그 한 조각은 다 잃을 수 있지만, 배 한 척 값보다는 훨씬 작지요. 배가 돌아오면 후추를 팔아 배와 선원에게 든 값을 치르고, 남는 돈을 낸 만큼 나눠 가지면 됩니다.”
혼자서는 띄울 수 없던 배가, 여럿이 나누자 띄울 수 있는 배가 되었다.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위험이 나뉜 것이다.
빵집 주인이 망설이며 말했다.
“나는 큰돈은 못 내오.”
“조각은 작게도 나눌 수 있소.” 피터가 답했다.
물잔을 내려놓던 안나의 손이 잠깐 멈췄다. 피터가 그것을 보았다.
“안나, 당신도 한 조각 내 보겠소? 큰돈이 아니어도 되오.”
안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야기는 곧 배 값으로 넘어갔지만, 그 물음은 안나에게 남았다.
그날 밤 안나는 침대 밑 주머니를 꺼냈다. 정말 자기 돈으로도 한 조각이 될지 알고 싶었다. 몇 해 동안 품삯에서 조금씩 떼어 모은 돈이었다. 안나는 후추 알을 세듯 동전을 하나씩 세었다. 피터의 말대로라면, 항해를 마치고 남는 돈이 생길 때 안나도 자기가 낸 만큼 그 돈을 나눠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돈이 불어나면 언젠가 남의 부엌일이 아닌 다른 일을 골라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돈은 몸이 아파 일을 못 하는 날 버틸 돈이기도 했다. 배가 가라앉으면 그 버팀목도 함께 가라앉는다. 안나는 주머니를 다시 묶었다. 대답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혼자 배 값을 다 내면
배가 가라앉으면 배 한 척 값을 혼자 다 잃는다.
열 사람이 나눠 내면
배가 가라앉으면 나는 내가 낸 한 조각을 다 잃는다. 다만 그 크기는 배 값의 10분의 1이다.
붉은 칸은 내 몫이다. 나머지 아홉 칸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고, 배가 가라앉으면 그들도 각자 낸 만큼 잃는다.
오늘의 주식에서는?
위험이 크면, 좋은 일도 시작되지 못한다
피터가 망설인 이유는 배가 나빠서가 아니었습니다. 성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는 항해였습니다. 문제는 실패했을 때의 손실이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수익이 좋아 보여도 선뜻 시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탁자에 모인 사람들은 왜 돈을 냈을까요? 일이 잘 풀리면 남는 몫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가 무사히 돌아와 짐이 잘 팔리고, 판 돈이 비용보다 많으면 남는 돈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그 돈을 낸 만큼 나눠 받기를 기대했습니다. 위험 나누기는 한 사람이 잃을 수 있는 크기를 줄여, 그 기대에 걸어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오늘날의 회사도 같은 문제를 만납니다. 큰 공장을 짓거나, 새 약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는 일을 떠올려 보세요. 한 사람이 내기 어려운 큰돈이 들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회사는 이 돈을 여러 사람에게서 조금씩 모으기도 합니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회사의 한 조각, 곧 주식을 건네는 것입니다. 주식을 산 사람이 기대하는 것도, 회사가 일을 잘 해냈을 때 자기 조각에 돌아오는 몫입니다. 다만 얼마를 돌려받을지, 낸 돈보다 많이 받을지는 보장되지 않습니다.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나뉠 뿐이다
도식에서 본 것처럼, 나눠 낸다고 바뀌는 것은 한 사람이 지는 무게입니다.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가 실패할 위험은 주식을 산 사람들이 함께 나눠 맡습니다. 그래서 주식을 산다는 것은 그 회사의 기회와 함께 위험의 한 조각을 받아 든다는 뜻입니다.
위험을 나눠 맡는다고 해서 내 돈이 안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가 실패하면 내가 산 주식의 값이 모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나뉘는 것은 회사 전체가 입는 손실입니다. 그 가운데 내가 잃을 수 있는 것은 많아야 내가 넣은 돈만큼입니다.
‘나눈다’는 말 때문에 헷갈리기 쉬운 말이 하나 있습니다. 분산 투자입니다. 위험 나누기는 여러 사람이 한 배를 나누는 것입니다. 분산 투자는 한 사람이 여러 배에 나눠 거는 것입니다.
주식의 탄생까지, 위험 나누기 다음에 필요했던 것
그런데 피터의 탁자에서 나온 것처럼 위험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아직 주식이 아닙니다. 이런 동업은 대개 셈을 끝내면 흩어졌습니다. 내 몫도 주로 배가 돌아와 짐과 배를 팔고 비용을 치른 뒤 남는 돈으로 정해졌습니다. 오늘날의 주식이 되기까지는 여러 장치가 더 필요했습니다. 시리즈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내 몫의 값이 무엇으로 정해지는지 차례로 살펴봅니다. 문을 닫을 때 남는 몫, 회사가 나눠 주는 배당, 회사가 사업으로 앞으로 벌어들일 돈, 그리고 그 몫을 사고파는 값입니다.
정리
- 주식의 바탕에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큰돈과 위험을 여럿이 나눠 맡는 원리가 있다.
- 위험을 나누면 위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잃는 크기가 작아진다. 내가 낸 몫은 다 잃을 수 있다.
- 사람들이 돈을 낸 까닭은 짐이 잘 팔려 비용을 치르고도 돈이 남으면, 낸 만큼 나눠 받으리라는 기대였다. 받을 금액과 이익은 보장되지 않는다.
- 위험 나누기는 시작일 뿐이다. 오늘날의 주식이 되기까지는 장치가 더 필요했다.
노트에 한 줄
내가 사려는 주식은, 어떤 위험의 한 조각을 나눠 드는 것일까?
알고 보면 — 안나는 실제 기록에서 왔습니다
1602년, 동인도회사가 처음으로 투자자를 모았습니다. 그때 암스테르담의 청약 장부에 하녀 닐트헨 코르넬리스의 이름이 적혔습니다. 닐트헨은 디르크 판 오스의 집에서 일했고, 100길더를 냈습니다.
이 기록을 연구한 페트람에 따르면, 닐트헨이 하루에 버는 돈은 50센트도 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셈하면, 한 푼도 쓰지 않고 200일 넘게 모아야 하는 돈입니다. 그해 암스테르담 지부에서만 1,143명이 장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큰 상인뿐 아니라 닐트헨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글의 안나는 닐트헨의 기록에서 착안한 가상 인물입니다. 실제 닐트헨이 어떤 마음으로 돈을 냈는지는 이 글이 참고한 자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출처: Lodewijk Petram, “The world’s first IPO”(2020), 저자의 책 The World’s First Stock Exchange(2014) 2장 「A New Company」.
안나는 조각을 내게 될까요? 낸다면, 그 돈은 언제 어떻게 돌아올까요?
다음 글 — 배는 돌아왔는데, 내 돈은 왜 아직 묶여 있을까
이 글은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다시 쓴 이야기입니다. 안나와 피터, 그리고 그들의 장면은 지어낸 것입니다. 그림 속 작은 나무 패는 ‘몫’을 눈으로 보여 주려는 장치입니다. 실제 주식 증서의 모습은 아닙니다. 동인도회사에서는 몫을 장부에 이름과 금액으로 적었습니다. 1602년 이전의 실제 모습은 이야기보다 다양했습니다. 1595년부터 일곱 해 동안 여러 도시에서 따로 꾸린 배만 80척에 이르렀습니다. 참고 자료: Gelderblom, De Jong & Jonker (2013), “The Formative Years of the Modern Corporation”, The Journal of Economic History 73(4), 1050–1076 (공개 원문, 작업 논문판).
이 글은 주식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글이며, 특정 상품이나 종목의 투자를 권하거나 말리지 않습니다.